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 사상 (문단 편집) ==== 지구전 ==== 『지구전론』은 [[마오쩌둥]]이 [[옌안]]에서 1938년 5월 26일 ~ 1938년 6월 3일까지 논의한 『항일전쟁전략』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공산당 내 존재했던 [[중일전쟁]] 성격 논증 이론인 중국필망론(中國必亡論)과 중국속승론(中國速勝論)을 모두 비판하였다. 그는 [[중일전쟁]]이 장기화가 될 것이라 예측했으며, 이러한 장기화 된 전쟁에 걸맞는 [[게릴라]]전을 구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는 군사력이 열악한 [[홍군]]의 특성과, 도시 점령을 위주로 활동하는 일본군과 당시 중국 군벌의 속성을 고려했으며, 대부분의 중국 인민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전쟁에서 자원이 되는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군수물자와 식량만이 아닌, 인심(人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심(人心)은 유동적이며 물과 같기 때문에 홍군의 주력도 유동적이어야 한며, 이러한 인심의 유동성은 곧 대중의 요구에 부여된 유동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전쟁 속에서도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서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도시에 속한 인민은 군벌의 손아귀에 있으며 군벌의 지배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민은 농촌 지역에 있는 농민이기 때문에 이들의 인심을 얻어 그것을 힘으로 사용하는 '고도로 정치화 된 군대'를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도시를 점(点), 도로를 선(線), 농촌을 면(面)으로 구분한 다음, 일정하게 뭉쳐져 있는 면의 집단을 구(區)라고 칭하였으며, 공산당의 영향력이 확고한 구(區)를 해방구(解放區)라고 칭했다. 여기서 그는 해방구의 단위를 이루는 면(面)의 유동성과 신축성을 조명하며, 해방구는 유동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면이 유동적인 이유는 적군의 감시가 이뤄지기 힘들며, 넓은 면적을 갖고 있기에 이동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또한 신축성이 높은 이유는, 면의 대부분이 농촌이고, 농촌은 식량을 담당하는 식량기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공산당에 대적하는 적이 설사 해당 지역이 해방구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고 쉽사리 그곳 지역을 탈환하기 어려우며, 농촌은 대가족 사회이므로 인민이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작은 탄압도 커다란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만약 다른 곳의 해방구가 무너진다면 즉각적으로 해방구가 아닌 곳을 해방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들 외에도 주도성, 계획성 등의 개념이 나오며, 전투 방식으로는 유격전, 진지전, 기동전, 소모전, 섬멸전 등을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구전론에서 마오쩌둥은 병사 개개의 역량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혁명에 나선 병사는 단순히 전투와 수동적 복종을 위한 병사가 아닌, 매사 스스로 다양한 지식을 학습하고 인민으로부터 배우는 동시에 그들의 혁명 역량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이념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즉, 마오쩌둥 사상에서 병사 개개의 정예주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인심을 얼마나 얻느냐", 그리고 "유격전을 어떻게 지휘하느냐", 마지막으로 "병사의 지적 역량을 얼마나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보았고, 바로 이 능력 전반을 지구력(持久力)이라고 하였기에 『지구전론』(持久戰論)이라 한 것이다. 『지구전론』의 특이할 점은, 군사 행위는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닌 고도의 정치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지구전론은 단순히 무력이 총동원되는 전쟁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이는 문화투쟁과 정당투쟁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논리여서 국공내전이나 현대의 마오주의 반군 파벌들이 잘 써먹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